
2026년 1월 25일,
한국 정치사의 묵직한 한 축이 베트남 호찌민에서 심근경색으로 조용히 퇴장했습니다.
이해찬 전 국무총리,
향년 74세.
이제 남은 건 두 가지죠.
그가 떠난 이유와 우리가 기억할 이유.
그리고, 어쩌면... 약간의 웃음과 눈물.
정치계의 ‘불도저’에서 ‘불멸의 실세’까지
이해찬.
정치계에서 그 이름 세 글자, 모르기 어렵습니다.
때론 “버럭 해찬”으로, 때론 “20년 집권론의 주창자”로.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그는 민주주의에 집착한 실용주의자였습니다.
서울대 사회학과 재학 시절,
박정희 유신에 반대하며 운동권에 뛰어든 이 청년은...
두 번의 투옥을 거쳐 1988년 13대 총선에서 관악을 당선.
전설의 시작이죠.
입법, 행정, 당 대표… 이 정도면 삼국통일급 스펙
김대중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 – “이해찬 세대”의 아버지
노무현 정부 국무총리 – 세종특별자치시 건설 주역
더불어민주당 대표 – “20년은 집권해야!”
한 사람의 정치 인생이 이렇게 다채롭기 어렵습니다.
교육개혁, 행정수도 이전, 정당개편, 대선 전략 설계까지.
이 정도면 진짜 전천후 정치공학자 아닙니까?
비주류의 손을 잡다 – 이재명과의 인연
그는 비주류 정치인 이재명 대통령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서 밀어준 숨은 스승이었습니다.
도덕성 논란으로 당에서 탈당 요구가 나오던 시절,
그를 물밑에서 보호하고 지켜낸 것도 이해찬이었죠.
“보통내기가 아니구나…”라고 했던 말, 기억합니다.
이해찬은 말보다 전략이 앞섰고,
말보단 숫자를 중요시했던, “말 없는 설계자”였습니다.
“나는 개량주의자다” – 혁명보다 느린 진보
그는 자서전에서 말했습니다.
“불철저한 급진보단, 철저한 개량이 낫다.”
뼛속까지 현실주의자였죠.
한 걸음씩 쌓아 올린 민주주의,
그 벽돌 하나하나엔 그의 손자국이 남았습니다.
민주주의는 결국 한 사람의 광기보단,
수천의 일관된 설계와 실천이 이룬 결과라는 걸 그는 몸소 보여줬습니다.
호찌민에서 조용히, 그러나 무겁게
그의 마지막은 조용했습니다.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으로 아태회의 참석 중,
호흡곤란으로 병원 이송.
스텐트 시술과 ECMO 치료에도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늘 정치의 중심에 있으면서도,
가장 조용한 방식으로 떠났습니다.
재치와 위트로 작별인사
이해찬이 살아생전 즐겨 쓰던 말이 하나 있었습니다.
“일단 밀어붙여!”
그러고 보니 그의 삶 전체가 그런 방식이었네요.
말보다 행동. 떠벌림보다 완성도.
그리고 누군가를 위한 ‘가림막’ 같은 존재.
그런 그에게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묻는 일입니다.
“당신이 남긴 그 많은 전쟁들,
그거 다 우리가 잘 이어가도 되는 건가요?”
그는 대답하겠죠.
“그렇지, 이제 너희가 밀어붙여.”
이해찬의 죽음은 끝이 아닌 ‘전환’이다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그것을 한 칸 앞으로 밀어놓고 떠났습니다.
정치인의 죽음 앞에서도 우리는 너무 진지할 필요 없습니다.
왜냐고요?
그는 무거운 역사의 사람인 동시에,
가끔 웃는 얼굴로 “한잔할까?”라고 말하던
이웃 아저씨 같은 존재였으니까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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