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요?
<731>은 잊힌 기억을 강제 소환합니다.
팝콘 먹으러 갔다가 역사책 통째로 삼켜버린 관객들이 왜 눈물을 쏟았는지, 그리고 일본 정부가 왜 이 영화를 불편해하는지, 차분히—그러나 날카롭게—짚어봅니다.
1. <731>은 무슨 영화인가: 비밀 실험실의 ‘실화 공포’
자오린산 감독의 <731>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만주 하얼빈 인근에서 운영된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정면으로 고발합니다. 플롯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대신 기록과 증언이 서사를 이끕니다. 페스트·콜레라 고의 감염, 동상 실험, 마취 없는 해부, 세균·화학무기 테스트—영화는 “이런 일이 정말 있었나?”를 “그랬다”로 바꿔놓는 불편한 증거들을 화면으로 밀어 넣습니다.
피해자는 중국인만이 아니었습니다. 중국인·한국인·러시아인 등 최소 수천 명이 ‘실험체’로 희생됐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영화는 개별의 고통을 대륙적 비극으로 확장합니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관객석에 흐르는 정적은, 공포 영화의 그것이 아니라 인간의 수치를 마주한 침묵입니다.
2. 왜 지금 반향인가: 달력의 날짜가 불을 붙였다
개봉일이 만주사변 9·18 발발일과 겹친 건 우연이 아닙니다.
역사적 트리거를 당겨 기억의 집단 작동을 설계한 것이죠.
더해 최근까지 이어진 각종 사건·사고와 외교 긴장 속에서 영화는 “과거를 직시하자”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그 결과: 개봉 첫날 예매 대폭주, 박스오피스 점유율 폭발, 상영관 ‘올빼미 타임’까지 매진. 누가 뭐래도, 관객은 ‘역사’를 보러 나왔습니다.
3. 731부대의 실체: 역사 부정이 두 번째 범죄다
731부대는 1930년대 관동군 산하 비밀 조직이었습니다.
국가 차원으로 기획된 생체실험이었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가해 주체가 사적 일탈이 아니라 군·정부 시스템이었기 때문이죠.
전후 책임자 상당수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일부 자료는 전쟁 뒤 ‘거래’의 대가로 은닉 혹은 면죄됐다는 역사적 지적이 이어져왔습니다.
“악행의 기록을 지우려는 자들은, 두 번째 범죄를 저지른다.” — 역사학의 묵언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실험실의 문이 다시 열리고, 지워진 기록이 복원되며, “몰랐다”는 변명이 설 자리를 잃습니다.
영화는 허구의 상상력이 아니라 기록의 상상력으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4. 일본 정부가 불편한 진실: ‘사과하면 지는 게임’이 아니다
역사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이겼다 졌다 할 게임이 아니죠.
그럼에도 일부 정치권·우익 담론은 과거사 문제를 “국격”의 문제로 포장하며 사과 회피를 정당화합니다.
문제는, 그럴수록 국제사회에서의 신뢰가 복리로 깎인다는 데 있습니다.
일본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인정하고 넘어가자”는 목소리가 꾸준히 있어왔지만, 정치적 계산이 그 목소리를 억눌러온 것이 사실입니다.
역설적이게도 <731>은 일본인 전체를 겨냥하지 않습니다.
영화가 겨누는 대상은 제국주의 체제와 전범 시스템, 그리고 현재의 역사 왜곡입니다.
오히려 일본의 양심적 연구자·언론·활동가들과 호흡이 맞는 지점이 많습니다.
풍자는 권력을 향해야지, 시민을 향해선 안 됩니다. 웃음은 날카로워야 하지만, 혐오가 되어선 안 되니까요.
5. 관객이 울고 분노한 이유: 서사 대신 증거, 오락 대신 윤리
- 사실성의 파괴력: ‘픽션’이라기엔 너무 구체적인 기록과 증언.
- 타자에서 나로: 특정 민족의 비극이 아닌, 인류 보편의 금기를 건드림.
- 현재의 문제: 부인·축소·회피가 지속되는 순간, 과거는 진행형이 됨.
관객은 스토리텔링의 장인이 아니라, 진실의 집요함에 무너졌습니다.
그래서 반향은 빠르고, 여진은 깁니다.
6. 풍자와 조소, 그러나 정확히: ‘과거를 지우는 기술’의 아이러니
일부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과거 삭제 단축키를 떠올려 봅시다.
“그건 오래된 일이다(CTRL+OLD)”, “증거가 부족하다(CTRL+BLUR)”, “우리도 피해자였다(CTRL+SHIFT+FLIP)”. 문제는 이 단축키가 영화관에서는 작동하지 않는다는 거죠.
스크린은 증거를 확대하고, 자막은 변명을 축소합니다.
역사 지우개가 자국민의 교과서에선 통할지 몰라도, 글로벌 관객의 눈앞에선 먹히지 않습니다.
조소는 여기로 향합니다.
역사를 PR로 관리하려는 오만. <731>은 그 오만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비주얼 증언입니다.
7. 한국에 주는 메시지: 우리의 과거사도 ‘현재진행형’
<731>이 이웃 나라의 이야기라고만 생각한다면 반쯤 놓치는 겁니다.
위안부·강제징용·학살과 탄압의 기억은 우리 한국에도 여전한 과제입니다.
“피해 서사”에 머무르지 말고, 기록·교육·법제화로 연결해야 합니다.
가해 책임이 분명한 사안에 대해선 국제 연대를 강화하고, 국내 정치가 과거사를 흥정 카드로 쓰지 못하게 견제 장치를 세워야 합니다.
8. 왜 ‘반일 영화’가 아니라 ‘반범죄 영화’인가
<731>은 ‘반일’이라는 표제를 쓰기엔 너무 보편적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반-전쟁범죄, 반-비인도성 영화죠.
가해의 국적을 지우자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책임은 명확히 하고, 혐오는 배제하자는 뜻입니다.
그래야 미래 세대가 배웁니다.
분노는 방향을 잃으면 폭력이 되지만, 증거와 윤리로 다듬어진 분노는 정의가 됩니다.
9. 엔딩을 바꾸는 법: 사과-기억-재발방지의 삼각편대
- 사과: 가해 책임의 공식 인정과 피해자 존엄 회복.
- 기억: 교과서·박물관·공공아카이브로 상시 접근 가능한 기록 구축.
- 재발방지: 법·제도로 전쟁범죄·인권침해에 무관용 원칙.
영화가 해피 엔딩을 주진 못합니다.
하지만 사회는 엔딩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끝났지만, 정의는 계속됩니다’—관객이 극장을 나서며 붙들어야 할 문장입니다.
10. 정리: 스크린은 거울이다
스크린은 과거를 비추는 거울이고, 관객은 현재를 반성하는 주체다.
<731>은 우리 모두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잊고 살았습니까?”
일본 정부의 역사 부정엔 풍자를, 전범 시스템엔 조소를, 그리고 20세기적 비극을 반성하는 이들에겐 연대를 보냅시다.
증오 대신 기록을, 보복 대신 정의를, 침묵 대신 교육을 선택하는 사회—그게 <731>이 울린 양심의 사이렌이 가리키는 좌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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