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뉴스, 그러나 그의 방식대로
개그계의 대부, 전유성이 향년 76세로 별세했습니다.
오랫동안 건강과 씨름하던 끝에, 9월 25일 밤 조용히 무대를 내려왔습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에 마련됐고,
장례는 코미디언협회장(희극인장)으로 치러집니다.
발인은 9월 28일 오전, 장지는 그가 사랑해 터를 잡았던 전북 남원 인월면입니다.
마지막 무대의 커튼콜을 기다리듯, 선후배들이 조용히,
그러나 뜨겁게 줄을 잇고 있습니다.
“늘 국민을 웃겨야 한다고 말하던 분, 교과서 같은 분이었습니다.” — 이홍렬
“천국에서도 이미 콘서트 기획 중이실 겁니다.” — 최양락
‘개그맨’이라는 직업을 만든 사람
1969년 TBC 방송작가로 출발해 작가와 코미디언의 경계를 넘나들며,
몸개그 일색이던 시대에 입담의 미학을 각인시킨 사람.
무엇보다 ‘개그맨’이라는 말을 우리말과 문화에 붙여준 당사자이기도 했죠.
그는 요란한 폭죽 대신, 똑똑하고 기막힌 타이밍으로 웃음을 지어 올렸습니다.
“웃음의 본질은 설명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듯이.
무대 뒤에서는 후배들의 ‘공연 PD’이자 ‘인생 코치’였습니다.
콘셉트와 포맷, 톤과 매너를 손봐주고,
“한 박자만 더 기다려”라며 간단한 조언 하나로 장내를 뒤집어놓게 만든,
현장의 연출가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는 한국 코미디의 설계도를 그린 사람입니다.
인간 전유성: 사랑, 가족, 그리고 삶의 디테일
고인의 인간적인 이야기도 조용히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외동딸 전제비 씨가 임종까지 곁을 지켰고,
후배 김신영이 물수건을 갈아가며 끝까지 손을 잡아주었다는 소식은,
그가 무대 밖에서도 사랑받는 ‘팀장’이었다는 걸 알려줍니다.
가수 진미령과의 사랑과 이별 또한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죠.
냉면 한 그릇의 짧은 에피소드는 섬세하지 못했던 어느 남자의 허술함이자,
동시에 두 사람의 빛나던 시간들이 더 선명해지는 여백이었습니다.
진미령은 조용히 근조화환을 보내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잘 지내요, 그곳에서도.’
우리 시대의 웃음 선생님
전유성의 유머는 “크게 웃기되, 싸게 웃기지 않는다”에 가까웠습니다.
말장난 하나에도 품위와 기품을 얹고,
한 템포 쉬어 관객 스스로 깨닫게 만드는 방식.
요즘 말로 하면, ‘지능형 개그’에 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의 한마디는 오래 남았고, 그의 후배들은 오래 버텼습니다.
개그는 정답이 없지만, 잘 웃기는 데는 규칙이 있다고 그는 믿었습니다.
관객을 존중하고, 동료를 믿고, 타이밍을 연습하는 것.
그 간단하고 어려운 규칙을, 그는 평생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규칙은 우리에게 ‘품위 있게 웃는 법’을 가르친 유산으로 남습니다.
그가 남긴 마지막 대본: “끝날 때까지는, 웃자”
비보 앞에서 우리는 쉽게 무너집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가 원하는 이별 방식은 조금 달랐을 겁니다.
“울어도 되는데, 마지막엔 한 번 웃어줘.” 그게 그의 대본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렇게 상상해봅니다.
지금쯤 천국 회의실에서 그는 이미 칠판을 다 채웠겠죠.
‘제1회 천상 라디오 공개코미디’ 포맷, 대본, 게스트 명단…
그리고 엔딩 멘트: “여러분, 다음 주도 꼭 만나요. 웃으면, 그게 천국입니다.”
안녕히, 우리 개그맨
전유성씨, 긴 시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신의 무대에서 우리는 재치로 위로받았고, 품위로 배웠습니다.
발인 후, 남원 인월면의 바람은 아마도 리허설 없는 애드리브처럼 맑고 또렷하겠지요.
우리도 그렇게 살아보겠습니다.
설명보다 발견을 사랑하고, 소리치기보다 타이밍을 아끼며,
싸구려 대신 품위를 택하는 개그로.
마지막 박수를 보냅니다. 그리고 약속합니다.
끝날 때까지는, 우리도 웃겠습니다.
※ 장례는 코미디언협회장으로 거행되며,
발인은 9월 28일 오전, 장지는 전북 남원 인월면입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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