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호용 신군부 사망,
태산은커녕 기러기 털보다 가벼운 그 마지막 깃털
역사라는 대극장엔 가끔 무척 지독하고 감흥 없는 장기 상영작이 걸립니다.
1979년 12월 12일 찬바람 부는 날 시작된 '신군부 악역 5인방'의 잔혹극이 드디어 막을 내렸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황영시에 이어 2026년 9월 13일 마지막 남은 배우까지 무대 뒤로 사라졌습니다.
이번 정호용 신군부 사망 소식은 40여 년간 이어져 온 헌정 파괴 잔혹극의 완결 편이자,
거창했던 권력의 최후가 얼마나 헛되고 미미한지 보여주는 실소 어린 마침표입니다.
중국 한나라의 사학자 사마천(司馬遷)은 《보임안서(報任安書)》에서
인간의 생사와 그 가치에 대해 참으로 뼈를 때리는 일침을 남긴 바 있습니다.
"人固有一死, 或重於泰山, 或輕於鴻毛"
(인고유일사, 혹중어태산, 혹경어홍모)
"사람은 누구나 한 번 죽지만, 어떤 죽음은 태산보다 무겁고, 어떤 죽음은 기러기 털보다 가볍다."
사마천의 이 위대한 준구(準句)를 가져와 오늘날의 인물에 대입해 보면 참으로 실소를 금할 수 없습니다.
별 기장과 장관 뱃지, 국회의원 타이틀로 온몸을 도배했던 그의 삶은 거창해 보였을지 몰라도,
이번 정호용 죽음이 남긴 무게감은
태산(泰山)은커녕 바람에 흩날리는 기러기 털(鴻毛) 하나만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유체이탈 화법과 81시간의 숨바꼭질
나라를 지키라고 준 칼자루를 쥐고 국민을 향해 휘두른 자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책임의 유체이탈'입니다.
1980년 5월 광주, 비무장 시민들을 향해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구타와 총격이 가해질 때
그는 육군 특전사령관 자리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생전 내내 "나는 작전지휘권이 없었고 행정과 군수만 담당했다"는 기적의 궤변을 늘어놓았습니다.
하지만 진상조사위가 밝혀낸 기록에 따르면,
그 '행정 전문가'께서는 광주에 무려 네 차례나 내려가 총 81시간을 체류하며
작전 회의를 주재하고 특전사 전용 상황실까지 알뜰하게 챙겼습니다.
심지어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 직전에는 가발과 수류탄, 항공사진을 챙겨주며
대원들을 격려하는 세심한 '행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현장감 넘치는 지원을 해놓고 "나와는 무관하다"며 내뺀 유체이탈 기술이야말로
이번 정호용 죽음이 한없이 깃털처럼 가벼워진 결정적 이유입니다.
역사 앞의 뻔뻔함, 사과 없는 깃털의 무게
대법원에서 내란목적살인과 반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징역 7년이 확정되었음에도 그분들의 인생관은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특별사면이라는 법적 혜택으로 감옥을 나온 뒤에도
피해자와 유족을 향한 진정 어린 사과는 단 한마디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빼앗긴 군인연금을 돌려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2019년 12월 12일에는 반란 주역들과 고급 음식점에 모여
와인 잔을 기울이며 '셀프 축배'를 들었습니다.
2021년에는 진상조사위에 억울하다며 진정서를 내놓고
미국으로 훌쩍 떠나 대면 조사를 피하더니,
급기야 90세가 넘은 나이에 정당 선대위 고문 명단에 슬그머니 이름을 올렸다
5시간 만에 쫓겨나는 코미디까지 연출했습니다.
이러한 당당한 무반성의 족적을 돌아보면,
이번 정호용 죽음을 접한 대중들이 애도 대신
허탈한 실소를 터뜨리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정호용 죽음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반성 없는 권력자의 종말은 참으로 볼품없다는 사실입니다.
신군부 5인방의 전멸과 남겨진 역사의 법정
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황영시, 그리고 마침내 이어진 정호용 죽음으로
신군부 핵심 5인은 모두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했습니다.
당사자들은 입을 다물고 세상을 떠났고,
최초 발포 명령이라는 마지막 비밀은 묻혔다고 안도했을지도 모릅니다.
이번 정호용 죽음으로 군 지휘부의 직접 입을 통한 진상 규명은 불가능해졌지만,
그렇다고 그들의 죄과까지 함께 묻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자신의 목숨을 바쳐 민주주의와 가족을 지켜낸 5·18 영령들의 희생은
사마천의 말대로 '태산보다 무거운 죽음(重於泰山)'이 되어 이 땅의 민주주의를 받치는 기둥이 되었습니다.
반면, 권력의 단물만 빨아먹고 끝까지 법적·도덕적 책임을 회피했던 이들의 마지막,
즉 이번 정호용 죽음을 포함한 신군부의 종말은 그저 '기러기 털보다 가벼운 죽음(輕於鴻毛)'으로 흩날려
역사의 벼랑 끝으로 떨어졌습니다.
영원한 역사적 단죄
권력은 짧고 역사는 깁니다.
법원의 사면으로 감옥문은 일찍 열렸을지 몰라도,
역사의 법정에는 시효도, 사면도 없습니다.
반성과 사과 없이 맞이한 정호용 죽음은,
그가 누렸던 부귀영화가 역사 앞에 얼마나 가벼운 깃털이었는지를 증명할 뿐입니다.
정호용 죽음을 마지막으로 신군부 악역들의 시대는 완전히 끝났지만,
그들이 남긴 죄업과 무책임한 태도는
훗날 권력을 탐하는 모든 불의한 자들에게 영원히 씻을 수 없는 경종으로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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