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 년 전, 소동파는 이렇게 물었다.
“인생이란 무엇과 같은가?
눈 덮인 진흙 위를 걸어간 기러기의 발자국과 같으니,
남은 흔적도 바람에 사라질 뿐이라.”
그러나 천 년이 지난 지금,
어떤 사람들은 그 발자국을 ‘지우려’ 애쓴다.
마치 자신이 지나간 길 위에 덮개를 덮어 진실을 감추려는 듯.
한덕수 전 총리의 삶이 바로 그런 예다.
숨기려 한 발자국
그는 언제나 단정한 얼굴로, 차분한 목소리로,
‘국가를 위해 헌신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목소리보다 길고, 진실은 그의 문장보다 강했다.
계엄령 시절의 어둠 속에서, 그는 ‘침묵’이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덮었다.
거짓을 유지하기 위한 그 침묵은 결국 스스로를 감옥에 가두는 벽이 되었다.
이제 드러난 사실들은 명확하다.
그는 책임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눈을 감았고,
기록을 조작하며, 폭력의 시간을 “절차적 질서”로 포장했다.
그가 지킨 것은 나라가 아니라, 자신의 자리와 체면이었다.
권력은 왜 사람을 추하게 만드는가
권력은 원래 사람을 키우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결을 드러내는 거울이다.
한덕수 전 총리는 그 거울 앞에서, 점점 본래의 얼굴을 잃었다.
초년의 그는 똑똑하고, 깔끔했으며,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말년에 이르러 그는 더 이상 합리의 사람이 아니라,
‘진실을 방어하기 위해 거짓을 선택한 자’가 되었다.
권력의 끝에서 그는 스스로를 지키려 했지만,
결국 진실의 파도에 몸을 던진 모래성처럼 무너졌다.
“泥上偶然留指爪,鴻飛那復計東西.”
— “진흙 위에 어쩌다 발자국이 남았지만, 기러기는 이미 날아가 동서도 알 수 없네.”
소동파의 구절은 마치 지금의 한덕수를 두고 한 말 같다.
그는 ‘기러기’가 아니라, 진흙 속에 빠져 허우적대는 사람이었다.
그는 떠나지 못했다.
진흙 위에서 계속 자신의 발자국을 덮으려 했을 뿐이다.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가 부정했던 사실들은 지금 다시 세상 위로 떠오르고 있다.
은폐된 문서, 삭제된 보고서, 조작된 해명들…
그 모든 것은 결국 시간이라는 재판장 앞에서 증거가 된다.
사람들은 묻는다.
“왜 그는 그렇게까지 했을까? 왜 인생의 말년에 진실을 외면했을까?”
아마 그는 믿었을 것이다.
진실도 권력처럼 통제될 수 있다고.
그러나 역사는 언제나 그 믿음을 배신한다.
인생 말년의 초라한 초상
한덕수 전 총리는 이제 권력의 중심에서도, 국민의 신뢰에서도 멀어졌다.
그가 평생 붙잡았던 ‘품격’은 허울이 되었고,
그가 자랑했던 ‘합리’는 변명으로 전락했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그가 거짓의 편에 섰던 사람”이라는 기록이다.
소동파는 이렇게 말했다.
“往事已成空,還如一夢中” — “지난 일은 이미 허무해졌고, 모두 꿈속의 일일 뿐.”
그러나 한덕수의 꿈은 유난히 추웠다.
그가 지키려던 ‘체면’은 무너졌고, 그가 숨기려던 ‘진실’은 세상에 남았다.
결국 그가 붙잡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남는 것은 한 줄의 기록
역사는 냉정하다.
한덕수가 남긴 것은 기념비가 아니라, 교훈의 사례다.
진실을 외면한 권력자는 언제나 늦게나마 심판받는다.
그가 아무리 발자국을 덮으려 해도,
그 진흙 위엔 여전히 그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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