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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

4.19 혁명: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함성

by 해피라이프99 2025. 4.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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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수괴 윤석열이 파면되고,

수괴의 수괴 거니가 포토라인 서는 날도 머지않았다.

이 모든 변화는 대한국민이 생업도 마다하고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촛불과 응원봉을 들고 외친 결과다.

 

대한민국 국민은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표준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바로

65년 전의 4.19 혁명이다.

 

4.19 혁명: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함성

1960년 4월, 학생과 시민들의 “민주주의를 지키자”는 외침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부정과 불의에 대한 분노, 자유와 정의에 대한 간절한 요구였다.

 

4.19는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시민이 역사의 주인’임을 입증한 민주 혁명의 서막이었다.

 

 혁명의 배경과 원인

1. 부정선거와 독재 정권

이승만 정권은 헌법을 개정해 대통령 3선을 가능케 했고,

국가보안법으로 언론과 야당을 탄압했다.

그리고 1960년 3월 15일, 명백한 부정선거가 자행되었다.

2. 마산 3.15 시위와 김주열 열사

마산의 고등학생 시위 중 김주열 열사의 시신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발견되면서,

전국적 분노가 폭발했다.

 

이는 시민들의 전국적 저항운동으로 이어졌다.

 

경과 – 서울로 번지는 혁명의 물결

1960년 4월 19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대규모 학생 시위가 벌어졌다.

10만 명 이상의 시민들이 거리로 나왔고,

경찰의 발포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폭력 진압은 오히려 더 큰 시민 저항을 불러왔고,

결국 정권은 무너진다.

 

결과 – 이승만 정권 붕괴와 민주 개헌

1. 이승만 하야

4월 26일, 국민의 분노 앞에 이승만은 하야 성명을 발표했다.

“나는 오늘 대통령직을 사임함으로써 국민의 뜻에 따르겠다.” – 이승만

2. 허정 과도정부와 제2공화국

허정 과도정부가 수립되고, 헌법이 개정되어

대통령 중심제에서 의원내각제로 전환되었다.

장면 총리가 이끄는 제2공화국 체제가 시작되었다.

 

 4.19 혁명의 의의

 

시민의 힘으로 독재를 무너뜨린 첫 민주 항쟁이며

헌정 질서와 주권 의식 전환의 전환점이 되었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민주주의의 뿌리

학생과 시민 연대의 사회적 정당성이 입증된 사건이다.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

1.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자유롭게 말하고 투표하며,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현재는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말자.

2. 불의와 침묵은 공범이다

정의롭지 않은 현실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책임을 피할 수 없는 행위다.

김주열 열사의 죽음은 그 경고였다.

3. 시민의 연대가 사회를 바꾼다

정치인도, 군인도 아닌,

시민과 학생이 만든 변화 – 그게 4.19 혁명이다.

 

 4.19는 계속된다

 

4.19 혁명은 단지 과거의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내란수괴 윤석열의 파면까지 이어진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작점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인가?”,

“지금 나는 목소리를 내고 있는가?”

 

그날 거리로 나섰던 이들의 용기처럼,

우리 역시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깨어 있는 시민으로 살아야 한다.

 

 6월 3일, 또 하나의 4.19

 

이제 6월 3일, 대선이 다가오고 있다.

선배들이 목숨 걸고 쟁취한 민주주의,

그것을 지켜낼 수 있는 또 다른 4.19는

우리의 한 표, 말 한마디에서 시작된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의 함성이,

이번 선거에서도 다시 한번 이 땅에 울리기를 바란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는다. 우리가 깨어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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