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기친람, 혼자 다 하려다 몸살 나는 리더들의 잔혹사
회사에서 부장님이 복사기 종이 잼 문제부터 탕비실 믹스커피 브랜드 선정까지 직접 결정하겠다고 나선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아이고 성실도 하셔라" 싶으신가요, 아니면 "제발 제 일이나 편하게 하게 내버려 두세요!" 하고 속으로 비명을 지르시나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조직의 리더들이 빠지기 쉬운 가장 달콤한 유혹이자 치명적인 함정이 바로 만기친람입니다. 오늘은 이 거창한 사자성어 속에 숨겨진 웃픈 국정 잔혹사와 리더십의 본질을 짚어보겠습니다.
1. 만기친람이란? 성실함의 훈장에서 마이크로매니저의 굴레로
사자성어의 한자를 풀어보면 萬(10,000 만), 機(틀/정무 기), 親(친히 친), 覽(볼 람) 자를 씁니다.
글자 그대로 임금이 국가의 수만 가지 정무를 친히 직접 살펴본다는 뜻이죠.
본래 조선시대나 서경(書經)의 어원에서는 "임금님 열일하신다!" 하는 칭송의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요새 세상에 리더가 부처별 일상 업무는 물론 온갖 사소한 일까지 챙기는 만기친람 스타일을 고수한다면?
성실함의 상징이 아니라 조직의 병목현상을 일으키는 '극강의 마이크로매니저'로 낙인찍히기 십상입니다.
권한 위임은 어디 가고 리더 혼자 슈퍼맨 놀이를 하냐는 비판을 받게 되는 것이죠.
2. 대통령도 당황한 "만기친람 할 시간도, 역량도 안 됩니다!"
최근 정치권에서도 이 단어가 아주 핫한 쟁점으로 떠올랐습니다.
국정 지지율이 최저치로 떨어지며 열린 대국민 기자회견장에서, 일각의 비판에 대해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해명에 나선 것입니다.
대통령은 "저에게 만기친람을 걱정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럴 시간도 역량도 되지 않는다"며 억울함(?)을 토로했습니다. 기본적으로 '권한은 주고 책임은 확실히 묻는다'는 자치단체장 시절의 원칙을 국정에도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죠.
부처 일상 사무는 각 장관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미프진 허용 문제처럼 누구든 결정하면 욕먹는 뜨거운 감자나 국가적 결단이 필요한 난제에만 집중하겠다는 설명이었습니다.
과거에는 거침없는 '사이다' 화법으로 국정을 끌고 가다 보니 언론과 야당으로부터 "이것이야말로 전형적인 만기친람 국정 운영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는데, 지지율 하락이라는 매운맛을 본 뒤 성찰과 반성의 자세로 돌아선 셈입니다.
3. '부족함'을 13번 언급한 몸낮춤과 만기친람의 역설
기자회견 분위기 역시 과거 170분을 훌쩍 넘기며 주도하던 기세와 달리, 웃음기를 거두고 99분 만에 차분하게 마무리되었습니다. 회견 중 '부족함'이라는 단어만 무려 13번을 언급했으니, 확실히 납작 엎드린 모습이었죠.
사실 리더가 의욕이 너무 넘치면 주변 참모들은 수동적으로 변하기 마련입니다.
모든 사안을 리더가 결정하는 만기친람 구조에서는 참모들이 "어차피 위에 올라가면 다 바뀔 텐데…" 하며 보고서 채우기에만 몰두하게 되니까요. 결국 최고 리더가 성실할수록 조직 전체는 머리를 쓰지 않는 역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에게 "부처 일상 사무 보고는 자제하고, 국민과의 접점에서 새로운 과제를 발굴하는 데나 집중하자"라고 지시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만기친람의 폐단을 막기 위한 고육지책이라 볼 수 있습니다.
4. 한국엔 만기친람, 중국엔 일리만기(日理萬機)?
재미있는 점은 이웃 나라 중국과의 언어 표현 차이입니다.
한국에서는 리더가 사소한 일까지 관여할 때 부작용을 비판하는 어조로 만기친람이라는 단어를 자주 끌어다 씁니다. 반면 중국에서는 똑같은 '만기(萬機)'라는 어근을 쓰면서도 ‘일리만기(日理萬機, Rì lǐ wàn jī)’라는 사자성어를 훨씬 많이 사용합니다. "매일(日) 수많은 정무(萬機)를 처리한다(理)"는 뜻인데요. 중국에서는 비판적인 뉘앙스보다는 리더나 국가 최고 지도자가 국가를 위해 밤낮없이 바쁘게 일하는 헌신적인 모습을 긍정적·중립적으로 묘사할 때 주로 쓰입니다.
같은 한자 문화권이라도 한국은 리더의 독주나 권한 위임 부재를 꼬집는 쪽에 방점을 두어 만기친람이라 부르고, 중국은 리더의 노고와 바쁨을 강조하여 '일리만기'라 부르니 참으로 흥미로운 문화적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5. 리더들이여,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라!
결국 국정이나 기업 경영이나 핵심은 똑같습니다.
혼자서 수만 가지 정무를 챙기는 만기친람으로는 복잡다단한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절대 다 해결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리더십은 모든 버튼을 직접 누르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고 책임져 주는 것입니다.
지방선거 이후 매서운 민심의 경고장을 받은 정부가 과연 말뿐인 해명을 넘어, 실질적인 권한 위임과 시스템 국정 운영으로 만기친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국민 눈높이에서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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