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네 인생이란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족 간에도 친구 간에도 사제지간에도..
하여간 나와 관계된 모든 것이...
마치 오늘 아침이 왔으나 이젠 헤어졌고,
또 내일 아침이 날 찾아올 것처럼...
학창 시절 국어시간에 만해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을 배우며
우린 회자정리 거자필반을 배웠다.
그리곤 졸업 후 40년을 매일의 일상에서 이 말을 목도하며 살아왔고 또 살게 될 것이다.
어제는 사랑하는 내 여친의 하나뿐인 딸인 나스쨔가
방학을 마치고 학교가 있는 카잔 (Kazan)으로 돌아갔다.
러시아 대학의 방학은 뭐 그리도 짧은지
말은 안 했어도 내 사랑 율리야는 어제 엄청 마음이 아렷을 것이다.
방학을 맞아 고향집을 찾았을 때 그 만남의 기쁨은
어제 이별의 아쉬움과 서운함으로 회자정리를 경험했고
다시 또 방학을 해 다시 고향 집을 찾을 땐
거자필반의 기쁨을 맛보게 됨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이처럼 무한 반복되는 만남과 이별의 뒤에는
소위 사람의 인연이란 소중한 것이기에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그 인연을 소중히 아끼고 감사하며 잘하라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집착이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인연을 대하란 큰 뜻이 있는 것이다.
집착과 사랑도 무늬만 다를 뿐 성질은 같은 것이지만,
모든 게 과유불급이라 했으니 지나치면 집착이 될 뿐이다.
오늘은 회자정리 거자필반에 대해 적어 본다.

1. 회자정리 거자필반은 누가 왜 한 말일까?
부처는 열반에 들기 직전 슬퍼하며 모인 제자들에게 말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만남에는 반드시 이별이 있다라고
즉, 너희들이 내 죽음을 슬퍼하지만
만나면 헤어지는 것처럼, 산 생명은 반드시 죽게 마련이니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외려 제자들을 위로한 말인 것이다.
일전에 말한 도리 (道理) 중 필연 (必然)의 도리를 부처님도 설파하신 것이다.
불교의 경전에 세상은 덧없는 것이니 만나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 <유교경> 고 했고,
또 <열반경>에는 흥성함에는 쇠퇴함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고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
여기서 회자정리 (会者定离)와 거자필반 (去者必返)의 말이 유래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속뜻을 생각해 보면 더 의미가 있다 하겠다.
세상만사 만남이 있고 헤어짐이 있는 것처럼
즉, 영원한 게 하나도 없는데 무슨 집착과 욕심 그리고 연연함이 필요하겠는가?
사랑의 이름으로 연연하거나 집착하지 말고
그저 순리대로 살며 특히 인간관계에 너무 연연하여 억지로 붙잡으려 하지 말라는 의미가 있다.
중국말의 顺其自然
즉 순리대로 살라는 의미이다.
2.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과 내 개인의 님의 침묵
고등학교 시절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은 너무 시어 (诗语)가 좋아 줄줄 외고 다녔다.
난 지금도 문학 장르 중 시 (诗)를 가장 좋아한다.
지금도 기억난다.
중략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 떠날 것을 미리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후략
내가 아니 거개의 우리가 회자정리 거자필반을 배운 시이다.
나는 2020년 1월 겨울방학을 맞아 귀국했었다.
그러나 뉘 알았으리?
듣도 보도 못한 코로나 19라는 놈이 창궐하여
사랑하는 내 딸 같은 제자들과 뜻밖의 이별을 할 줄,
그리고 그 이별의 시간이 이리도 길어질 줄..

언제나 녀석들이 졸업을 하면서 내 곁을 떠났지만
방학을 맞아 귀국한 것이 영영 이별이 될 줄이야...
하지만 난 아직도 믿고 있다.
중국이 아무리 칩 4 동맹 등을 이유로 비자 발급을 거절하지만
언젠간 사랑하는 녀석들과 재회의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을..
그때는 사랑하는 율리야와 함께 하여 훨씬 더 큰 기쁨의 거자필반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아직도 동료 교수집에 맡겨져 있는 내 짐들은 무사하려나 모르겠다.
3. 사랑과 집착 사이
집착, 미련 또는 연연은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다만 그 사랑이 지나쳤을 뿐이다.
요즘의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돈, 재물, 명예, 권력 등을 너무도 사랑하는 사회를 살아간다.
언젠간 떠나게 될 이 세상에 무슨 미련과 집착이 많아 그런가
돈 권력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그로 인해 수많은 인간관계가 갈등을 겪으며 일상을 보낸다.
"망자가 입는 수의 (寿衣)에는 주머니가 없다"고 했다.
지 아무리 돈과 권력을 누렸더라도 죽어서 저승 갈 때 입고 갈 수의에는 주머니가 없다.
왜, 이 세상에 가졌던 모든 것들을 저승에 가져갈 수 없으니까?
돈 많았던 고 이건희 회장이나 고 구본무 회장도 저승 갈 땐 한 푼도 가져가지 못했다.
이게 우리 같은 범부들에게 주는 큰 가르침이 아닐까?
인생수업이란 책에서 가르쳐 준 것처럼
"좀 더 참고, 좀 더 베풀고, 좀 더 재미있게 살 걸"을
두 분 작고하신 회장님도 무언으로 대변해 주지는 않았을지..
회자정리 거자필반!
삶의 허무주의나 인생무상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외려 인생을 한 발짝은 물러나서 관조하며
집착과 미련을 버린 채 진정으로 사랑하며 살으란 말로 내겐 다가온다,
앞에서 언급한 순리대로 살라는 말처럼...
자연스러운 사랑의 마음으로
고려 말 공민왕의 스승이자 무학대사의 스승이기도 한
나옹선사가 가르쳐 준 것처럼 나는 살고자 한다.
나이 들어감에 따라 더욱더 느껴진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 하네
노여움도 내려놓고 아쉬움도 내려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 나옹선사 <청산가> -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고
또 그 헤어짐의 뒤에는 재회의 기쁨이 있다.
집착과 미련을 버리고, 진정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리 대로 사는 인생!
이게 내가 살고자 하는 내 삶이다.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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