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해 첫날 도로공사를 상대로 3-0 완승을 거뒀을 때만 해도,
“아, 드디어 올라가는구나”라는 희망이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래서일까.
흥국생명전 0-3 패배는 유난히 더 아팠다.
배구 팬이란 게 원래 그렇다.
이기면 우리가 잘해서 기쁜 거고,
지면 감독 전술부터 리시브 각도까지 전부 마음속에서 다시 뛴다.
나는 인쿠시와 고희진 감독의 팬이다.
그래서 이번 경기는 단순한 1패가 아니라,
“아… 이건 진짜 아쉽다”라는 긴 한숨이 나오는 경기였다.
인쿠시, 오늘도 혼자서 계단을 들고 뛰었다
인쿠시는 이날도 해냈다.
득점표만 보면 “그래, 역시 인쿠시”라는 말이 자동으로 나온다.
높이, 파워, 투지까지.
공이 오면 일단 때려 넣고 보는 그 모습은 마치
‘팀이 어려울수록 더 강해지는 RPG 캐릭터’ 같았다.
문제는 너무 많은 몬스터를 혼자 상대해야 했다는 점이다.
리시브가 흔들리면 공격 루트는 단순해지고,
그 단순해진 길 끝에는 늘 인쿠시가 있었다.
흥국생명의 블로킹은 이미 답을 알고 있었고,
인쿠시는 그걸 알면서도 또 점프했다.
그게 바로 팬이 인쿠시를 미워할 수 없는 이유다.
리시브는 흔들렸고, 흐름은 흘러갔다
이번 경기의 가장 뼈아픈 장면은 화려한 블로킹도, 강서브도 아니었다.
바로 리시브 한 번에 분위기가 넘어가는 순간들이었다.
서브 하나, 목적타 하나에 공격 선택지가 줄어들고
그 줄어든 선택지 끝에 “인쿠시에게 높게”라는 공식이 반복됐다.
상대는 그 공식을 외워버렸고, 경기는 점점 더 어려워졌다.
배구에서 리시브는 참 잔인하다.
안 보일 땐 아무도 신경 안 쓰지만, 무너지면 모든 게 보인다.
그래도 나는 고희진 감독을 믿는다
패배 후엔 늘 감독 이름이 먼저 나온다.
전술이 어땠다, 교체 타이밍이 늦었다, 변화가 없었다.
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하지만 고희진 감독은 지금 결과보다 과정을 만들어가는 시간에 있다.
이 팀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다.
그래서 더 흔들리고, 그래서 더 아프다.
다만 분명한 건 있다. 이 팀은 포기하는 팀은 아니다.
고 감독의 선택은 늘 “버티면서 배운다” 쪽에 가깝다.
지금은 손해처럼 보여도,
시즌 끝에 보면 남는 게 있을 거라 믿고 싶다.
졌지만, 응원은 더 커졌다
이번 경기는 탈꼴찌라는 단어를 다시 멀게 만들었다.
그래서 아쉽고, 그래서 속상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다음 경기는 꼭 본다”라는 마음이 더 커졌다.
인쿠시는 오늘도 팀을 위해 점프했고,
고희진 감독은 또 한 번 데이터를 쌓았을 것이다.
배구는 결국 누적의 스포츠다.
한 경기의 패배가 시즌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이 경기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때 그 패배가 있었지.
그래서 지금의 정관장이 있는 거야.”
오늘은 졌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정관장을 응원한다.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도,
인쿠시가 또 점프할 때 나는 또 소리 없이 박수를 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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